상단여백
HOME 기획 탐방
해병대정신과 서번트리더십을 발휘하다김영동 해병 272기 동기회장
김영동 해병 272기 동기회장

■ ‘해병대로 가겠다’ 마음먹고…
김영동 해병 272기 동기회장은 해병대에 입대해 1974년 7월부터 77년 2월까지 32개월 간 근무했다. 근무 기간 동안 해병대 생활을 백령도에서 지냈다.
74년 8월 15일 문세광의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과 도끼 만행 사건으로 남북 관계가 팽팽한 대치 국면이었던 군 복무 시기에 진지 구축 작업만 하다가 제대했다.
1인당 세 자루의 삽이 닳아야 제대한다고 말 할 정도로 고생만 하다가 나왔다.
해병대에 간 이유는 동네 형이 해병대에 갔다가 어깨에 문신으로 ‘불합격’되어 돌아와서는 문신한 곳의 피부 껍데기를 이를 악물고 자신이 도려내고 다시 해병대에 간 것을 보고는 ‘그 아픔을 이겨내고 다시 도전하는 해병대가 그렇게 좋은 곳인가?’고 의문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형이 휴가 나왔을 때 각이 선 카키색 바지에 링을 차고 저벅저벅 소리를 내며 다니는 멋있는 모습에 그만 홀딱 반해 버렸다.
또 한 번의 해병대의 멋있는 모습은 버스에서 해병대들이 시끄럽게 군가를 부르고 있는데 해병대장교가 “그만하라” 하자 그 자리에서 경례를 하면서 딱 그치는 모습을 보고 그 군기에 또 다시 반했다.
육군 징집영장이 나오자 ‘해병대로 가겠다’ 마음먹고 해병대에 지원했다.
당시 서울지방병무청 수험번호 2,189번이어서 ‘꽤 많이 뽑나 보다’ 생각했는데 막상 동기생이 480명이었음을 알자 자신이 그렇게 어려운 관문을 뚫고 입대한 것이 더욱 자랑스러워졌다.
“그렇게 들어간 해병대에서 얼마나 맞았는지 기억도 없을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후회는 안 합니다. 더 배운 것이 많거든요”하며 김 회장은 해병대를 자랑스럽게 말했다.

■ 평생 호텔서비스 업무만 해왔다
제대 후 대 관광회사에 입사하여 임진각에 근무하다가 호텔 쪽으로 옮겨 평생을 살아왔다.
금년 66세인 김 회장은 2014년 해병 272기 동기회 사무국장을 맡았다가 2016년 회장이 되었다.
해병 272기 동기회는 480명 중 110명이 모이는 단단한 조직이다.
동기생 중 힘들어하는 사람을 품어주며 함께 협조하는 14명의 회원에게 감사장을 주었다는 것을 큰 자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헌신하는 동기생들이 많았다는 증거다.
동기생 직계의 애경사에는 전국을 마다않고 찾아가 기뻐하고 슬퍼하는 시간을 꼭 함께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김영동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제가 해병대에 가니까 멋있는 것보다 고통이 더 많았습니다. 그 괴로움을 참고 이겨내기 위해 자신과의 싸움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해병으로 태어났습니다. 그 해병대정신이 오늘 나를 지켜줬다고 확신합니다.”
두 딸의 아버지이고 오포전우회 고문인 김영동 해병 272기 동기회장은 매사에 적극적인 서번트리더십(Servant Leadership)의 소유자다. 【신동설 발행인】

해병 272기 동기생들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저작권자 © 무적해병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무적해병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