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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父子 모두 부사관지승스님(홍권표, 부 176기)

‘부사관’ 부친에게 이어받은 투철한 국가관
아버지 이어 모두 부사관 길 걸은 5형제
‘정자세, 상병하복’이 우리 가문의 전통

지승스님(홍권표, 부 176기)

■ 속세에서의 삶
홍권표(부 176) 전우는 강원 원주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에 서울로 와서 경복중·고등학교를 나오고 대학교 행정학과를 1985년 입학했다.
어렸을 적부터 남달리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고 독립심과 의협심이 강했던 홍권표는 대학에 입학하여 학업을 하려고 했으나 시대의 어려움 때문에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데모가 한참 유행처럼 번져나가던 시절 선배들로부터 정권에 대항하는 데모에 참가 하라는 강요는 당사자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정이었고, 선배들의 강요를 물리치고 학업보다 국가의 충성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런 이유는 홍권표의 성장배경에서 잘 말해주고 있었다.
육군 부사관으로 전역한 부친(홍인수, 2003년 작고)으로부터 이어받은 투철한 국가관과 상명하복 정신으로 무장하고 성장한 당사자는 대학 선배들의 말에 전혀 동요함 없이 자신의 학업에만 열중하는 과정에서, 선배들은 “신입생이 건방지게 왜 선배의 말을 따르지 않는가?”에 반항했고, 결국은 당사자는 선배를 대항하는 상명하복의 사고를 치고 1학기도 마치기 전에 해병대로 지원 입대하기에 이른 것이다.
태권도 공인 5단과 선친으로부터 남에게 어떤 경우라도 지고 살지 말라는 강한 정신력과 엄격한 교육을 받은 홍권표는 국가에 역행하는 선배들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말을 안 해도 충분히 예측이 되는 대목이다.
1985년 6월부터 94년 4월(중사 전역)까지 부사관학교에서 성적우수자로서 훈 단장 표창과 해병대 2사단 태권도교관과 1사단 연대 태권도교관을 역임했고, 90년 10월 백령도 침투 무장공비를 잡아 해군참모총장 개인 표창과 6여단 흑룡부대 표창을 받는데 공적을 세우는 등 그의 해병대 생활은 반짝반짝 빛나는 눈부신 활약의 일변도였다.
그는 학업을 중단하지 않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군 생활 중 방통대와 사이버대에서 학문을 연마했고 지금은 동방문화대학원 대학에서 석·박사 통합과정을 이수 중에 있다.

■ 속세를 떠난 삶
법명 지승스님(본명 홍권표)은 지금 한국불교태고종관음협회 종무원장과 보현사 주지스님으로 불도에 정진하고 있는 중이다.
군에서 전역한 후 국내에서 손꼽히는 사설 경호 회사인 대한경호서비스를 설립 운영했던 경호 보안 전문가로서 활동을 하였고, 대한민국 최초로 해외 지사 8곳을 개설 운영했고, 특히 북경올림픽 때는 중국 관계자들에게 지역보안 컨설팅을 하는 등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었다.
그렇게 남에게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면서 사업이 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걸 내려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곧바로 속세를 떠났다.


| 일문일답 |

- 스님은 무슨 인연으로 부처님의 제자가 되셨습니까?

저는 태어날 때 이미 속세를 떠나야 할 인연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연로하신 어머니가 저에게 이런 말씀하시더군요.
“애야, 나는 네가 부처님의 제자가 될 줄 알았다. 너는 태어날 때 탯줄을 너의 목에 감고 두 손을 합장한 모습으로 태어났단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어머니에게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제 자신이 속세를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 길로 대전에 자리 잡고 있던 당시(도흥사) 도흥스님을 찾아 갔더니 “왜 이제 왔느냐? 너는 부처님 제자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놀라 스님에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여쭙자, 도흥 스님께서 제가 살아왔던 과정을 꿰뚫은 듯 말씀하시면서 껄껄 웃으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왜 부처님의 인연이 이토록 중요하고 바른길을 인도하시는 것인 줄 깨닫게 되었고 얼마 후에 은사이신 도흥스님에게 불제자의 길을 가겠다고 다짐하고 출가자가 되었습니다.


- 지승스님에게 부처님의 큰 치유 능력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능력인지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는지요?

약사여래부처님께서 저에게 치유능력을 주셨습니다. 일반인들은 미신, 또는 귀신을 쪼는 테마의식은 잘 알고 있지만. 하늘 천(天) 땅 지(地) 사람 인(人) 즉, 천지인(天地人)이라는 말은 듣고도 그 뜻을 이해하는 사람이 드뭅니다.
천지인은 삼재를 이루는 하늘과 땅, 그리고 삶을 일컫는 말로 우주의 에너지를 몸에 통과시켜 자신 스스로 자연치유를 할 수 있도록 신체에 기(氣) 순환을 만들어주어 스스로 병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치유하는 능력을 갖도록 도움을 주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원인 모를 지병으로 고생하는 중생들에게 천지인의 애너지 ‘기’를 넣어주고 마음을 편안하고 신체를 스스로 다스려 치료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능력을 주신 겁니다.
또 저는 거의 매일같이 스스로를 반성하고 지나온 경험을 생각하면서 후손들이나 중생들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는 바람으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일기 형식으로 글을 써 ‘지승스님의 지혜를 나누는 글’이란 제목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3,423일째 특별행사를 제외하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참다운 수행의 글을 중생과 후손들을 위해서 남기고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책을 편찬하자고 제의를 받았으나, 출가자인 저는 부처님님이 선몽해주신 대로 5천 일을 기록해야 책을 중생들에게 공개할 것이라 아직은 시기가 아니라고 조심하고 있습니다.
2012년 4월부터 나만의 깨달음의 글을 7년 동안 지속적으로 쓰게 된 동기는 포교의 방식을 달리한 것입니다.


- 속세에서의 혈육의 인연을 말씀해주십시오.

저의 부친은 육군 부사관(중사) 출신이고 6·25전쟁 참전유공자이며, 장남 형님은 맹호부대 월남전에서 전사, 둘째 형은 해병대 헌병 부사관 셋째 형은 특전사, 넷째 형도 해병대 부사관, 막내인 제가 해병대 부사관, 이렇게 해서 가족들 중 6명이 부사관 출신입니다.


- 어떻게 작고한 큰형만 제외하고 모두 부사관이 되었는지 궁금하군요.

아버님의 엄격한 교육이 그렇게 만든 것 같습니다. 가정교육의 제1조는 “남에게 지지 말라”였습니다.
만약 나가서 얻어맞고 들어오면 부친에게 정말 혼쭐이 납니다. 또한, 항상 자신에 맞는 직업에 따른 복장은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란 생각으로 항상 복장 단정과 정자세 유지하도록 교육 받았습니다.
나가서 음주 가무를 하고 귀가를 해도 복장이 불량하면 방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혼쭐이 났습니다.
저희 형제들이 엄한 아버지 밑에서 군기 있는 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히 직업군인으로 가게 된 것 같습니다.


| 지승스님의 마음을 다스리는 글 |

■ 스스로 깨우치는 것은 뇌리에 영원한다

우리들이 스스로 하고자 노력을 하게 된다면, 우리들의 뇌는 어려움도 즐거움으로 바꿔서 인식하게 될 것이며 고통도 즐거움으로 바뀌어 갈 것입니다.
우리들이 항상 웃으려고 노력은 한다면 우리들의 육신은 스스로 건강한 신체 구조로 변화 되면서 만물에 도전하는 강한정신을 가지게 될 것이며, 도전하지 못하고 의지가 약한 사람들은 진정한 삶의 행복을 느낄 수 없을 것이며, 평소의 자신의 삶에 있어서 일부러 악조건을 만들어서 즐기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어떠한 악조건에서도 반드시 생존의 기회를 잡게 될 것입니다.
그라서 우리들은 한곳에 안주가 아닌 도전을 위해 태어나야 할 것이며, 그 도전에서 성취감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힘들다고 주저앉지 말고, 무엇이든지 시작을 해보는 것이 좋으나, 항상 우리들은 기본에 충실하지 못한다면 더더욱 안 될 것입니다.
기본은 바로 우리들 곁에 항상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한국불교관음협회 종무원장 지승 합장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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