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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역사의 돌감자장학회 회장 박무웅(해병 144기) 전우
박무웅 회장  【사진= 박흥배 보도국장】

■ 해병대는 그 이상의 가치를 박무웅에게 심어줬다
2019년 새해를 맞이하여 따뜻한 마음을 품은 사람들을 만났다.
박무웅 노병은 1963년 해병 144기로 입대하여 1965년 제대했다.
1961년 5·16혁명이 나던 해 박무웅 청년은 서울시립대 농업토목과에 입학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산업사회 초입에 있던 농경사회 국가였기에 농업 관련 학과에 들어가려면 웬만한 실력으로는 합격하기 힘들었다.
박무웅 청년은 높은 경쟁을 뚫고 합격하여 대학을 다니던 중 가정형편이 급격히 어려움에 처하는 바람에 부모님으로부터 등록금을 조달받을 수 없게 되었다.
신문배달 등 고학(아르바이트)을 하면서 ‘내 힘으로 학교를 마쳐야 한다’는 의지가 불타있었던 박무웅은 병역의무를 마치고 대학을 마쳐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복무 기간이 타군보다 짧고 시기를 잘 맞춰 지원하면 제대 즉시 복학할 수 있는 해병대를 택했다. 이렇게 해서 1963년에 해병 144기가 되었다.
대학을 빨리 마쳐야겠다는 목적으로 해병대를 지원했지만 빨간 명찰을 가슴에 달면서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라면 결코 나는 해병대를 지원하지 않았을 것이다”는 해병대정신이 박무웅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1965년 박무웅 병장은 제대 3개월을 남겨놓고 월남전 파병 1진으로 선발됐다.
농업토목을 전공했으니 베트남에서 할 일이 많을 것이라는 상부의 판단에서였다.
파병 명령에 의해 수송선을 타러 가는 도중 외아들임이 파악돼 파병 취소 명령을 받고 되돌아와서 3개월 후에 제대하여 다니던 대학에 복학하여 졸업하자마자 1967년 서울시청 공무원에 합격했다.

■ 가나안농군학교 김용기장로의 정신도 가졌다
입대 전 청년 시절의 어느 날 가나안농군학교 김용기 장로의 강의를 듣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평생 처음 눈물을 흘렸다.
가나안농군학교 교장이자 창시자인 김용기 장로는 근면·절약·봉사가 곧 ‘김용기정신’이라 할 만큼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국민계몽운동의 큰 획을 그은 선각자다.
김용기 장로는 “생일은 환갑되는 해부터 사회에 공이 있는 사람만 치러주자. 세상에 태어난 것이 좋은 게 아니라 좋은 일을 하는 것에 탄생의 뜻이 있다”며 인간의 가치를 정의했다.
1962년 서슬이 시퍼렇던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군복 차림으로 가나안농군학교를 방문하여 감자와 빵 한 조각을 입에 넣는 순간 김용기 교장은 “잠깐만요!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자’ 구호를 외치고 먹어야 합니다”고 말하여 박 의장이 큰소리로 구호를 외치고 빵을 먹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박무웅 청년은 김용기 장로를 수행하여 전국을 함께 돌면서 국민계몽사상 전파에 앞장섰었다.
김용기 장로는 “새로운 마음을 가져야 새사람이 되고, 새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새마을이고, 새마을이 모이면 새 국가가 된다”는 기치를 말하며 박무웅을 사랑하였고 가르쳤다.
박무웅 회장은 그 정신이 새마을운동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박무웅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해병대정신’과 ‘근면·절약·봉사의 김용기정신’을 터득하여 내 것으로 만들면서 인간가치의 실현을 위한 기초가 형성됐다.

■ 돌감자장학회를 통한 베풂과 사랑은 필생의 여정이다
박무웅 전우는 1975년 돌감자장학회를 설립하여 빠듯한 공무원 월급을 쪼개어 형편이 어려운 시골 학생을 남모르게 돕기 시작했다.
어렵게 공부한 자신의 지난날이 늘 가슴이 남아있었기에 “어려운 환경에 처한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돕자”는 순수한 마음 하나로 혼자서 시작한 일이었다.
부인조차 모르던 이 일이 하나둘 학생이 늘어나면서 식구들과 주위에 알려졌고 결국 1983년에는 돌감자처럼 순수한 마음을 나누며 살자는 뜻에서 ‘돌감자장학회’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돌감자장학회’의 도움으로 무사히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성인이 된 뒤에도 더 어려운 아이들을 후원하겠다고 나서 현재는 국내와 중국 등지에서 수백 명의 식구들로 늘어났다.
1983년 서울시공무원을 사직하고 당시 월급이 공무원 보다 2.5배나 많은 대림산업 토목부서로 자리를 옮겨 장학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갔다.
지금까지 43년째 이어오는 장학사업은 박무웅 회장에게는 필생의 여정일 뿐이다.
베풂은 대가를 바라는 일이 아니다. 그냥 사랑을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박 회장의 장학회는 재단을 설립한 곳이 아니고 순수한 개인 자금으로 주기 때문에 많은 혜택을 주지 못하고 학비 전액 또는 일부만 지급하고 있는 중이다.

■ 역사의 빛을 발하는 타임캡슐에 저장된 서울시민
고건 서울시장 당시 서울시민대상 받았는데, 그 당시 최무룡 영화배우가 대종상 시상금 1,000만 원을 받았는데 그 금액과 같은 액수의 시상금을 받았지만 모두 장학금으로 썼다.
서울도읍 600년 기념으로 남산에 묻어둔 타임캡슐에 서울 600년 역사에서 기록되는 서울시민 600인 명단에 등재하여 그 이름이 타임캡슐에 등재되는 영광을 가졌다.
그만큼 박무웅 노병은 자신의 자리에서 항상 남에게 빛을 발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지금은 고향 속초시로 귀향하여 속초시문화원장을 역임하는 등 지역사회 지도자의 길을 가면서 돌감자펜션을 운영하면서 장학금 조달을 하고 있는 중이다.
박무웅 노병은 “해병대전우들 중에도 훌륭한 사회적 위치에 있고, 여러 방면에서 재능 있는 분들이 많은 만큼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해병대전우가 앞장서고 널리 퍼져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무웅 노병이 살아온 길을 조명해보면서 자랑스러운 해병대전우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신동설 발행인】

| 박무웅 회장을 말하는 글 |

● 박무웅 속초문화원장의 인생 마무리 지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돌감자장학회 동암(東巖) 박무웅(朴武雄) 회장님, 바로 이 분의 생활이 무척 아름다운 사람 중의 한 분으로 비춰졌습니다.
넉넉지도 않은 형편에 1975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어오고 계셨습니다.
그것도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아니고 헐 먹고 헐 입어 등록금도 못 낼 형편의 학생들만 골라 장학금을 지급하여 온 것입니다.
이제는 돌감자장학회가 중국, 필리핀, 월남까지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허리도 시원치 않아 쩔쩔매면서도 농장을 가꿔 거기서 나온 농산물들을 장학생들이나 주위의 친지 이웃들에게 나누고 계시는 것을 보고 바로 성자의 모습은 저래야 한다는 생각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분의 생활을 보면서 문득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을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첫째, 사랑을 다 주는 사람입니다. 둘째, 손해를 감수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셋째, 마음이 넉넉한 사람입니다. 넷째, 덕을 베푸는 사람입니다. 다섯째, 무상(無相)의 심법을 가진 사람입니다. 여섯째, 남의 잘못을 용서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일곱째,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여덟째, 감사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최소한 이 여덟 가지 만이라도 간직하고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분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칭송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속초의 돌감자장학회 박무웅 회장님의 삶을 살펴보다가 생각해본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입니다.
우리 나머지 인생 아름다운 사람으로 불리다 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출처 : 김덕권의 훈훈한 인생 글 중에서 박무웅 속초문화원장의 ‘인생 마무리 지혜’ 편 인용>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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