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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포격전과 해병대 독립유낙준 제30대 해병대사령관 (예·해병중장)
유낙준 제30대 해병대사령관 (예·해병중장)

“쏴!” 나는 크게 외쳤다 - 응징 결단의 순간


고(故) 서정우 하사, 고(故) 문광욱 일병 명복 빈다
부상 전우 15명 제대로 된 대우와 보상 받기를…

연평도 포격전에 대해 논의하기 앞서 우선 연평도 포격전에서 희생하신 고(故) 서정우 하사, 고(故) 문광욱 일병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부상 전우 15명이 하루 빨리 제대로 된 대우와 보상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당시 연평도 포격전을 계기로 해병대의 연평도 포격 대응사격까지의 13분을 회고해보겠다.
적의 포탄이 내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는데 포를 끌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 자리에 있었던 대원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포탄이 어디서 떨어지고 있는지 정확히 확인이 안 되다가 북한에서 떨어지는 것이 맞다고 확인 후 포격 대원들, 즉 해병들이 중대장에게 발포를 건의하고, 중대장은 부대장에게, 부대장이 사령관에게 건의하여 쏘게 됐다. 그 시간이 13분이 걸렸다.
솔직한 마음으로 국가적 위기에 대한 걱정과 함께 개인적 고민이 함께 들었다. 참모들이 주위에 다 앉아 있었는데 아무도 차마 나를 쳐다보지 못했다.
그때 든 생각이 ‘내가 결정해야겠구나. 저들에게 고통을 주면 안 되겠다”였다.
그렇게 혼자 수많은 고민을 했지만 시계를 보니 불과 2분이 지나 있었다.
“쏴!” 나는 크게 외쳤다.
그렇게 우리 해병대는 적의 포격에 맞서 맞대응 사격을 13분 만에 할 수 있었다.
연평도 포격전 이전에는 서북도서 해병대 병력을 1천 명만 남기고 줄이려는 계획이 있었는데, 해병대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병력이 원상 복귀했고, 오히려 김포, 연평도와 백령도에 수천 명의 병력이 증병됐다. 지금의 공격헬기도 그때 배치됐다.
포격전 다음 날부터 성금이 줄을 이었다. 기업, 신문사, 은행 수없이 많은 단체의 성금이 들어왔다.
이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 장학재단을 만들어, 장학재단 창설기념으로 해병대간부 자녀들에게 혜택을 주고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지금은 대원들과 국가유공자 자녀, 군 간부 자녀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나는 백령도 세 번 근무했었다. NLL에 대한 논란은 노무현정부 때부터 있던 일이다.
이것만은 절대 안 된다. 북한의 장산곶 부대는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백령도로 침투가 가능하고 중국 어선과 북한 어선들의 싹쓸이도 우려되고 있다.
NLL이 무너지면 우리 서북도서 주민들 살 수 없고 그 곳은 빈 땅이 된다.
해병대 독자성 보장법은 연평도 포격전의 영향을 받았다. 공성진 전 국회의원이 시작했다.
각계각층의 예비역들이 해병대 독립법안을 많이 제안했었다. 당시 국방위원장은 해병대 출신이었고 2011년 4월 15일에 국방위를 통과하고 본회의에 상정됐다.
우리 목표는 해병대 독립이다. 나는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국회에 있는 해병대 예비역들이 큰 역할을 해주리라 기대한다.
모든 전우들의 힘이 모아지고 특별히 입법기관에 종사하는 해병대 예비역 전우들이 더 힘을 모아주기를 당부한다.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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