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 특집
사령부 해체 원인과 뒷이야기차수정 예·해병소장
차수정 예·해병소장

당시 국방장관, 합참의장 등이 1년여 준비기간 갖고 해체 계획 진행 결과

이병문 대장, 계급 낮은 육군 장군과
언쟁하면서까지 사령부 해체 적극 반대했다

해병대는 1973년 10월 10일 3개 전투 부대만 남기고 사령부가 해체됐다. 6·25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으나 해체를 당한 것이다. 이 원인이 무엇일까?
나는 몸소 그 과정을 현장에서 체험하고 눈으로 봤다. 우리 해병대라면 누구나 알아야하고 시사하는 바가 많은 해병대 역사이다.
공식용어는 해병대 개편, 재편성이다. 여러 설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게 정권안보설이다.
5·16혁명 때 해병대가 선봉에 있었는데 그 후 11년이 지나 더 이상 해병대의 힘에 의존하여 정권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해병대에 의해 안정적 정권이 붕괴될 수 있어 해체했다고 믿는 설이다.
이것은 제2의 토사구팽설이라고 불리며, 해병대 5·16혁명 주체세력들이 구속됐기 때문에 나온 듯하다.
두 번째는 경제논리다. 국가 예산 절약을 위해 해병대가 해체되었다고 하는 설이다.
그러나 병력 4,150명 감축은 전체 국방예산 4%를 차지하는 해병대의 미약한 예산 중 더 미약한 부분을 차지하기에 4천여 명 줄인다고 국가예산에 보탬이 되겠나?
모두 허구에 불과하다. 그 당시 해병대 해체는 국가전략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 국군을 개편하기 위해 통합군 편성(김희덕 특검장군)을 했고, 5개 작전사령부, 6개 지원 사령부로 개편해 그 위에 국군 총사령부를 만들었다.
해군은 해상군사령부로 개편되고 공군은 항공군 사령부로 개편됐으나 해병대는 설 자리를 잃을 위기였다.
해병대는 5개 상륙여단으로 통합돼 해병대라는 명칭과 지휘관을 잃게 되었다. 실질적으로 육군에게 다 넘어간 것이다.
1971년 9월, 이러한 법제정을 위해 전략회의가 개최되고 육·해·공군 중장들은 이 법안에 모두 찬성했으나, 해병대사령관은 반대했다.
해병대 역사와 전통을 지키기 위한 항거를 한 것이다.
그 당시 사령관이었던 이병문 전 사령관은 계급이 더 낮은 김희덕 장군과 심한 언쟁을 벌였고 이 사실이 청와대에 즉각 보고되면서 육군에서 해병대 응징 분위기가 확대됐다.
당시 국방부장관, 합참의장, 육군대장은 해병대 해체 계획을 세웠고 1년 여간 준비 기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해병대는 그 사실을 모르고 오직 국가에 충성하고 있었다.
이병문 전 사령관은 그때의 일을 따로 특별하게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할 이야기를 차수정 장군이 다 해주었다”고 말해 모든 사실을 확인해줬다.
그때 해병대사령관의 전략군 편성 반대로 오늘 날 해병대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이병문 사령관의 공으로 인정해야한다.
지금 이 시점에 다시 그때를 돌아보는 이유는 지금의 일들이 많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를 돌아보면서 우리의 미래를 생각해볼 때이다.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저작권자 © 무적해병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무적해병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