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전우는 18살 때 외교구락부(외교클럽의 일본식발음 표현)에 들어가서 선배들에게 연회 음료 칵테일 기술을 전수받았다.
당시는 양주나 칵테일을 접할 수 있는 인사는 국내 정상급 인사들이었다.
김 전우는 이승만 대통령부터 윤보선, 최규하, 박정희 대통령까지 모셨던 당대 최고의 ‘식음료 캡’이었다.
일제강점기 시대의 서울 장안에서 고관대작들이 주로 많이 모인 곳이 국일관, 아서원, 명월관, 손탁호텔이었다.
정부가 수립되고 난 후 정치인들의 정치 공간 1번지는 남산 구KBS 건물 맞은편 근처에 있던 외교구락부다.
그곳은 1980년대 김대중. 김영삼 두 정치인이 모여 대통령 후보 단일화를 선언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서비스 분야에서 칵테일은 식음료 분야의 꽃이다.
당대 최고급 사교장에서는 내로라하는 칵테일 고수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고, 그 고수 밑을 거쳐 간 사람들은 모두 고수가 된다.
해병 207기 김영하 전우는 입대 당시 28살이었고, 18살 때 그곳에 입문했으니 10년차 되는 고수급에 해당된다.
김 전우는 외교구락부의 연회 분야에서 고수 자리에 있다가 해운대관광호텔이 지어지자 그곳으로 발탁되어 갔다.
해운대관광호텔은 1960년대 한강 이남에 있는 제일 고급 호텔이다.
1962년 그 호텔 착공식이 대한뉴스 410호에 보도될 정도였다.
해운대관광호텔은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정상급 정객들이 자주 찾았고, 포항이 지근거리여서 해병대 사령관을 비롯한 고급 장교들도 자주 이용했던 곳이다.
당시 김 전우는 해운대관광호텔 식음료분야 캡이어서 자연히 유명 인사들과 절친한 사이였지만 박 대통령은 모실 수 없었다.
이유는 28살이 되도록 군에 안 갔기 때문이었다.
그곳에 이동용(준장) 장군이 자주 출입하고 있었는데 김 고수와는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
“형님, 저 해병대에 가겠습니다.”
“훈련이 빡센데 할 수 있겠어?”
“문제없습니다.”
“그 각오가 씩씩하다. 너는 할 수 있겠다. 가라!”
그 말 한마디에 그날로 진해 정문으로 달려갔단다.
해병대 별 하나면 산천초목이 떠는데 장군이 가라고 했으니 ‘입대에 문제가 있겠나?’ 싶어서 간 것이다.
그런데 진해 신병훈련소 정문에서 “왜 왔느냐? 해병대 창설 이래 서류 한 장 없이 입대하러 오는 사람이 처음이다.”하며 막더란다.
이미 군 기피자 신세인 자신이 갈 곳이라곤 해병대밖에 없는데 물러설 수 없다는 깡다구(?)가 생기더란다.
그 자리에서 장교들이 퇴근하는 시간을 기다려서 나오는 소령(배종근 전 포항의장대장)을 붙들고 이동용 장군이 가라고 해서 왔다고 사정 얘기를 하니까 일단 가입대를 시켰단다.
가입대 기간 동안은 민간인, 입대 선서 후는 군인 신분이 해병대다.
가입대 기간 동안 군 기피자로 잡혀가면 끝장이라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몰랐다고 당시를 말했다.
드디어 입대 선서를 무사히 하고 정식 해병대가 되었다.
그때 기수가 해병 207기였고, 그의 나이가 동기보다 10살 위인 28살이었다.
이미 결혼하여 아내까지 있는 가장이 신병이 된 것이다.
김 전우는 신병 수료 1주일 전에 훈련병이 외박한 역사를 세운 사람이기도 하다.
신병 훈련 받는 중에 아내가 면회를 왔는데, 그것도 밤에 와서 남편을 면회해달라고 했단다.
정문에서 들어줄 리가 없다.
그랬더니 문을 두드리면서 “내 남편 면회 왔는데 왜 못 만나게 하느냐?”고 악을 쓰더란다.
위병이 할 수 없어서 당직사령에게 보고했더니 면회를 허락해서 외박을 한, 해병대 역사에 없는 ‘훈련병 외박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상남훈련소로 넘어가서 사격 훈련을 받는 중 아내가 또 면회를 왔다.
마찬가지로 면회를 안 시켜주니까 “내 남편인데 왜 못 만나게 하느냐?”고 아내가 말도 안 되는 항의를 하며 또 깽판을 쳤다.
중대장 문수창 대위가 시끄러운 소동에 “누구냐?”고 물었다.
“김영하 신병 부인입니다.”고 부하가 대답하자 “이런 일이 처음이다. 아예 휴가 보내라.”고 해서 10일간 포상 휴가를 받았다.
신병 기간 중 아내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207기 동기들은 김영하 전우를 모두 기억한다.
내무반에서 담배를 피운 최초의 신병이었기 때문이다.
저녁 순검 후 화랑담배 한 대를 물고 피우려는 순간 들켰단다.
워낙 차이가 나는 노병이 한 일이니 빳다는 안치고 “화랑 담배 한 갑 모두 한 입에 물어!”하더니 그 자리에서 “빨아!” 명령하더란다.
한 입에 8개비밖에 안 들어가는 것을 물고 장초가 꽁초가 되기까지 하늘이 노랗도록 실컷 빨았다고 했다.
이렇게 신병 훈련을 마치자 동기생들은 모두 배속 부대로 떠나가고 김 해병 혼자만 진해에 남았다.
얼마 있더니 별 2개가 달린 지프차가 와서 대위하고 병장이 타라는 것이다.
그렇게 간 곳이 박성철 통제부사령관 공관이었고, 그때 부관은 이정윤 대위였다.
함께 태우러 왔던 당번전령 병장(박종건, 해병 186기)은 워낙 사람이 좋아 “형이라고 할 수도 없고…. 군대라 어쩔 수 없다.”며 잘 대해주더란다.
거기서 3개월 있으니까 한남동 막사로 전출 명령이 떨어져 강기천 사령관 공관으로 배속되었다.
당시 강 사령관은 박정희 대통령과 형제처럼 대하는 친밀한 사이였던 실세 장군이었다.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은 대통령도 모셔야 하고 외국인, 미군 장군들과의 사교도 폭넓게 해야 하는데 전국 제일의 극동호텔 캡틴이 왔으니 ‘국제적 수준의 연회를 손색없이 치를 수 있는 해병대’라는 명성도 얻을 수 있어 사모님까지 반겨줬다고 한다.
그 후 정광모, 이병문 사령관까지 실력 발휘를 하며 모셨단다.
그러니 김영하 전우는 해병대로서는 큰 재목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36개월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제대하자 곧장 극동호텔에 복직하여 다시 옛날의 명성을 되찾았다.
그 후 속리산광광호텔로 옮겨 근무하고, 골프장 매니저 생활을 하다가 정년퇴직하였다.
퇴직하고 곧장 안성에 땅을 구입하여 블루베리 농장을 시작했다.
김 전우는 ‘최고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이 생활 철학인지라 블루베리 국내 최고 실력자를 찾아가서 무조건 제일 맛있는 나무를 팔든가 재배를 대행하든가 해달라고 부탁하였단다.
그 전문가는 김 전우가 자신을 믿고 찾아준 것이 고마워서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여 수확을 거뒀다.
아는 사람들에게 블루베리 농장을 했다고 하니까 주문이 쇄도하더란다.
그런데 그 다음이 더 행복했다고 했다.
대부분이 재주문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맛이 무척 좋다며 재주문하는 바람에 저장할 재고도 없이 모두 팔렸다고 했다.
특히 자신이 모셨던 사령관들이 “영하야, 블루베리 잘 되냐?”하며 가끔씩 전화를 해주시는 것이 너무 고맙다고 했다.
김 전우가 기자를 초청한 이유는 “나는 영원한 해병인데 조그만 광고라도 신문에 내는 것이 해병대를 위한 일이 아니겠느냐?”며 농장 사진을 찍어 달라고 초청한 것이다.
기자는 김영하 전우의 특별한 삶을 취재하기도 하고, 광고도 받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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