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구청 맞은편에 있는 모 호텔 건물 관리인으로 근무하는 윤재화 전우(해병 181기)는 뜻밖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전화를 한 사람은 옛 상관 송재신 중대장(해사 14기)이었다.
그는 “나, 송재신이야. 기억하겠어? 27중대장(1967. 9~1968. 4) 송재신.”이란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국내도 아닌 미국에서 휴대폰으로 자신을 찾은 사람이 48년 전 송재신 중대장이라니…. 놀랄 만도 했으리라.
“엣? 대장님, 대장님이 어떻게 제게 전화를?”
“윤 해병, 고맙네. 정말 고마워. 윤 해병이 지난 현충일 국립서울현충원에 잠들어 있는 27중대 전사자 묘소를 참배한 사실을 ‘해간 35기 카페’를 통해 알았네. 올해 처음이 아니라 수십 년째 계속해오고 있다는 것도.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고맙다는 말밖엔. 고마우이.”
그리고 두 사람은 48년 전 월남전선에서 생사고락을 같이하다 숨진 전우들을 회억하며 함께 ‘눈물의 통화’를 했다고 한다.
지난달 17일 윤 전우는 필자와 통화를 하면서도 계속 울먹였다.
“중대장님과 저, 함께 울었습니다. 돌아가신 이수장 소대장님과 귀국 15일을 남겨 놓고 목숨을 잃은 동기생 등 5대대 27중대 13명의 전사자 얼굴이 일순에 떠올라 도저히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저도 그랬지만 중대장님도 그러셨나 봅니다.”
이 날 윤 전우와 참으로 많은 얘길 나눈 송 중대장은 마지막으로 그에게 부탁을 하더란다.
“윤 해병, 내가 한국에 나가게 되면 미리 연락을 할 테니 27중대 대원들을 모아주게. 그리고 국립서울현충원을 찾도록 하세. 소주 한 컵, 담배 한 개비씩 놓고 그들을 함께 애도하세.”
윤재화 전우, 그는 해병 181기 역전의 용사(주월한국군사령관 표창)다.
자의로 파월 근무를 1년 연장, 2년간 소총수로 베트남 전선을 누볐다.
해병 181기는 1966년 8월 27일 입대, 9월 5일 군번을 받았다.
해간 35기가 1966년 3월 7일 해병학교에 입교했으니까 입대 일자로 보면 해간 35기보다 다섯 달쯤 늦다.
그가 1966년 제1상륙사단 3연대 2대대 7중대 화기소대에 배치됐을 때 소대장은 해간 35기 이읍우 소위, 1967년 제2여단 5대대 27중대 2소대장도 해간 35기 김정일 중위였다.
같은 해간 35기였던 1소대장 이수장 중위(전사)는 윤 전우의 상담에 자애롭게 응해주는 등 마음을 많이 써줘 김정일 소대장 이상으로 가까이 지냈단다.
그리고 그가 귀국 전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5대대 81mm 소대장도 해간 35기 이강용 중위였다.
이렇게 군복무 35개월 내내 해간 35기 장교들과 함께 근무한 셈이니 그와 해간 35기의 인연은 남다르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윤재화 전우는 송재신 중대장과 띠동갑이다.
1947년 2월 20일생, 고향은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출산 남쪽 동네다.
그 무렵 다른 해병 대부분이 그랬듯이 윤 전우도 집안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못했다.
그래서 고향에서 중학교만 졸업하고 매부 소개로 운수 회사에 취직, 2009년 시력이 떨어져 핸들을 놓을 때까지 30년 넘게 운수업에 종사했다.
그동안 천일고속관광(17년), 통일교 그룹 세일여행사 등에서 일하며 1남 1녀를 키웠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외손녀가 올해 11살이라고 했다.
주위에서 ‘불의를 보고는 참지 못하는 성격’을 알아줘 세일여행사에 근무할 땐 노조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해병 181기는 1969년 7월 31일 제대했다.
46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요즘도 1, 3, 5, 7, 9월 두 달에 한 번씩 연락이 닿는 동기생끼리 만나 식사를 같이 하며 ‘세상사는 얘기’들을 나누고 있단다. 그 자리에 가면 “47년생이 막내”라고.
윤 전우는 “중대장님께서 월남서 같이 근무했던 동료들을 모을 수 있도록 하라고 분부하셨는데 큰일 났다.”고 했다.
“전국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수소문하려면 바빠질 것”같다고 말했다.
윤 전우는 송 중대장 얘기를 더 들려줬다.
그는 파월 근무 2년이 끝날 무렵 1년 더 복무 연장 신청을 했다.
그랬더니 송 중대장이 주먹으로 윤 해병의 볼 부근을 툭툭 치면서 “제대 일자가 이미 넘었는데 무슨 소리야. 안 돼, 귀국해.”라며 복무 연장 신청을 받아주지 않았다고 한다.
순전히 그의 안위를 걱정해서였다.
그가 복무연장을 신청한 건 어렸을 적 집안의 가난이 싫어 가출해 부모님께 저지른 불효에 대한 뉘우침 때문에,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부모님께 경제적으로 도움을 드리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전투 중 제가 전사하면 국가에서 보상금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걸 부모님이 받으시게 될 테고…. 그러면 어느 정도 제 불효에 대한 보상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랬던 겁니다.”
이 대목에서 그는 또 울먹였다.
그의 송 중대장 얘기는 이어졌다. 귀국 일자가 목전에 달했을 무렵이었다.
“귀국 준비는 했나?” 중대장이 묻더란다.
“못했습니다.” 소총수였던 그가 귀국 준비를 할 수 없었던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 이를 어쩐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귀국 준비를 못했다는 윤 전우의 얘기를 들은 중대장이 전령을 시켜 ‘귀국 박스(Box)’를 짜게 한 뒤 그 안에 씨-레이션(C-Ration)을 채워 그의 집으로 보내줬다고 한다.
제대 후 제1상륙사단 영농교육대 교육을 마치고 집에 가보니 중대장이 보낸 ‘귀국 박스’가 도착해 있더란다.
박스를 열어 보니 씨-레이션이 가득했다.
그 당시 전남 강진군 성전면 시골에선 도저히 볼 수 없는 ‘진품’, ‘만물’이었다.
“그 무렵 제 고향 마을이 102가구쯤 됐는데 중대장님이 보내주신 씨-레이션으로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 덕에 제 인기가 많이 올라갔었죠.”
윤 전우는 다시 한 번 “중대장님이 정말 그립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만나 뵙고 싶습니다.”고 했다.
‘송재신 대장.’ 해간 35기는 임관 45주년(2011. 5. 28) 기념식 이후 송재신 중대장을 ‘송 대장’으로 부르기로 결의했는데, 그는 최초의 해사 출신 해병학교 중대장이었다.
‘송 대장’과 해간 35기의 인연은 그가 1966년 미 해병학교 기초반 과정(OBC, 1964~5년) 수료 후 진해교육기지 교수단 제1과 교관으로 근무하다 해간 35기 후보생 중대장으로 부임하면서 시작됐다.
그와 35기와의 인연은 올해로 49년, 임관 50주년을 맞는 2016년이면 50년, 반세기에 걸쳐 끈끈하게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어찌 보면 그는 해간 35기 때문에 진급과 입신, 영달의 기회를 잃어버린 루저(Loser)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해간 35기가 1966년 8월 8일 새벽 김해공군비행학교를 기습 공격했던 ‘8.8사건’과 관련, ‘부하 범죄 불진정’, ‘사령관 훈령 위반’ 등의 애매한 혐의(마지막엔 군법회의 공소 취하)로 군법회의 회부→파면→국방부 항고→복직→1969년 의병 전역하는 불운을 겪었다.
그러나 ‘송 대장’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해간 35기를 원망하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1973년 미국 이민 후 기회가 닿을 때마다 해간 35기 동기회에 적잖은 도움을 주고 있고, 더 많이 도와주지 못해 미안해한다.
이런 ‘송 대장’의 처신과 자세를 감히 ‘송 대장의 인품’이라고 한다면 실례일까?
‘송재신 대장(Gen. Song).’
‘바람직한 사도(師道)가 무엇이며, 또한 사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이를 말이 아닌 실을 통해 보여준 이, 그가 바로 우리의 ‘송 대장’이다.
해간 35기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한 점 흐트러짐 없는 언행을 통해 ‘해병 장교는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를 보여주고, 훈육했던 ‘송 대장’을.
그가 2016년 5월 임관 50주년을 맞는 해간 35기를 만나러 다시 온다.
80세를 넘겼지만 여전히 꼿꼿하고, 멋있고, 기품 있는 ‘송 대장.’
해간 35기도 제2여단 5대대 27중대원들 못 지 않게 그와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송재신 중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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