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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해병대 3년, 미 육군 2년, 미 해병대5년, 도합 10년, 세계최강 부대를 거친사나이서성규(해병202기, ROKMC, US Army, USMC 예,중사)

서성규 전우는 월남전이 치열했던 1968년 6월 해병 202기로 지원 입대했다. 
대구에서 태어나 명문고 계성고등학교를 졸업 후 중앙대학교 경상대학 2년 재학 중에
“해병대는 22개월이면 제대한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곧장 해병대에 지원했다가 ‘북한특수군 1.21 청와대 습격’으로 인하여 36개월을 꽉 채우고 제대한 사람이다.  
서 전우는 68년 신병훈련을 마친지 3개월도 안되어 파월명령이 떨어져 그해 12월 부산부두에서 수송선에 올랐다. 
월남에 도착하여 각종 작전에 투입되어 용감하게 싸웠다. 
그러던 어느 날 미 해병대와 공동으로 보급차량 작전을 하게 됐다. 
‘도라지’ ‘위스키’ ‘챨리’ 등 좌표를 읽으며 목표지점으로 진출하던 중 지휘관이 영어로 하달된 좌표를 잘못 해석하여 아군과 미 해병대가 맞서는 형국이 됐다. 
영어에 능통했던 서 해병이 이를 지적, 시정하여 좌표대로 작전을 전개해 나가던 도중 적으로부터 포사격을 받았다. 
그때  미 해병대 상사(필립 죤)가 파편 상을 크게 당하자 서 해병은 죤 상사를 그대로 놔둬서는 출혈로 죽을 것만 같아 상처를 치료하고 지혈을 시키는 등 응급처치를 해주곤 그만 기절을 했다. 
무장행군 훈련을 할 때 지치고 힘든 전우를 끝까지 부축하여 목적지까지 탈출해야 하는 해병대정신이 그가 기절 직전에도 무의식으로 발동했던 것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고막 수술을 받고 병원침대에 있었다. 
다행히 더 이상은 상처가 없었다. 
자신이 기절했던 이유는, 죤 상사를 응급 초치하고 옆에 엎드려 있는 수송 참모(소령)를 부축하려고 일으키다가 보니 목이 날아간 것을 보곤 놀라서 그만 기절을 한 것이다. 
그렇게 참혹한 전쟁을 경험한 서 해병은 제대 후 김성곤 공화당 재경위원장을 모셨다가 정치파동에 휩싸여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어느 날 친구가 전화를 해서 “너의 이름이 신문에 나왔다”며 월남에서 자신이 구출해줬던 필립 죤 상사가 국방부를 통해 자기를 찾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미 국무성 초청으로 미국에 건너간 것이 어언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1973년 도미했을 때 세계 오일파동으로 미 경제가 악화되어 일자리가 없었다. 
미국에 직업군인 제도가 있음을 안 서성규 전우는 74년도에 미 육군으로 지원, 해병대 병력증명서, 학력증명서, 훈장증명서를 제출하자 곧장 미 육군상병 계급을 부여받곤 2년간 의정부 주한 미군부대로 배치되었다. 
2년간 미 육군에 근무 후 미 해병대 부사관으로 다시 지원해 미 해병대 중사로 5년간 근무했다. 
훈련소에 들어간 어느 날 훈련병 전원을 집합시키곤 자신을 포함한 3명을 부르더니 M16 소총 세 자루를 주며 눈을 가리고 분해조립을 시켰다. 
월남에서 밥 먹듯 했던 일이라서 13분 만에 해치웠더니 훈련 소장이 “이제부터 훈련을 열외 한다”고 명령했다. 
그 후 오크라호마에서 포병교육을 이수한 후 하사가 되어 의정부로 와서 155mm포대장을 맡았다. 
오키나와, 샌디애고, 뉴저지를 돌면서 5년간 미 해병대 부사관 으로 근무하다가 중사로 전역했다. 
이렇게 서성규 전우는 대한민국 해병대(ROKMC) 3년, 미국 육군(US ARMY) 2년, 미국 해병대(USMC) 5년, 합하여 10년간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대를 모두 거치게 된 것이다. 
한국해병대는 전우가 힘들면 도와주는 전우애를 갖지만 미 해병대는 전우가 훈련 중 전우가 쓰러지면 절대로 도와주지 못하게 한다. 
“전투는 자신이 하는 것이지 전우가 해주는 것이 아니다”며 생존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미 해병대라고 했다. 
그렇지만 전우가 전사하면 목숨 걸고 전우의 시체를 데리고 나온다. 
그 같은 훈련을 익힌 서성규 전우는 미국 생활을 하면서 미 해병대에서 배운 생존법칙이 많은 교훈이 되었다. 
또 미국시민으로 당당한 위치를 갖게 되었다. 
해병대 출신들을 알아주는 건 미국사회도 한국과 마찬가지다. 
서성규 전우는 한·미 해병대와 미 육군에서 10년을 거친(3년간 한국해병대, 7년간 미 육군,해병대 부사관) ‘강한 사나이’다. 
이 같은 타이틀은 아무나 하지 못한 일이기에 더욱 값진 가치를 갖는다. 
부사관은 군대에서 중추신경과 같기에 장군부터 사병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이해하고 챙겨야한다. 
그렇기에 부사관은 사병들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다. 
세계 최강 미해병대와 한국해병대에서 담금질된 서성규 전우는 시카고에 사는 동안  중서부 한인상공회의소 회장, 영남향우회 회장을 하면서 1982년 시카고해병대전우회 회장직을 맡다가 작년 말에 신임회장(김정호전우)에게 자리를 넘겼다.

신동설 발행인  sds15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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