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아들 왔어요”고 나타나면 침대에 누워 계신 96세 어머니 눈가에 눈물이 고이며 엷은 미소로 반겨주신다. 그리곤 “바쁜데 왜 왔어. 얼른 가 아범!”하신다.
만나면 끝없이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모자지간인데 아무 할 말이 없어진다. “그동안 잘 계셨어요? 식사 잘하시죠?” 등의 말도 못한다. 어머니의 상태를 뻔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조용히 기도를 한다. “하나님 우리 어머니 사시는 동안 편안하게 해주십시오. 어머니가 세상사는 그날까지 고통 없는 나날을 보내게 해주십시오.” 지금의 어머니 상태에서는 이것만이 최상의 소망이기 때문이다.
불과 9개월 전만 해도 계단을 성큼성큼 오르셨던 어머니가 어느 날 급성 폐렴으로 누우시더니 한 달 여 후에 허리가 굽어지고 침대서 일어나질 못하신다.
그리고는 넘어져서 고관절이 부러졌다. 큰 병원에서 급하게 수술을 해드렸지만 꼼짝 못하시고 지금 요양원 침대에서 대소변을 받아내고 있는 중이다.
1922년 전주 李씨 막내딸로 태어나 평산 申씨 댁으로 시집와서 삼남매를 낳으시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셨다. 6·25전쟁이 터지자 아버지는 처가댁으로 피난을 오셨다가 9·28서울수복 3일전에 의용군으로 끌려 나가셨다.
“3일내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가신 아버지는 지금까지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계시다. 그동안 우리 집이 가난하고 힘든 생활을 한 건 그 시대 사람들은 누구나 겪는 일이어서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부잣집 막내로 고생을 몰랐던 어머니가 20대에 남편과 생이별하고 전쟁의 폐허 위에서 세 아이들을 키우기는 너무나 힘들었다. 툭하면 야단치고 스트레스 받고 하는 등 어머니는 일생동안 항상 마음 편하게 사신 적이 없다. 그렇게 일생을 살아온 불쌍한 여인이다.
남들은 환갑잔치와 칠순잔치를 부모님께 해드리지만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의 생사를 모르기에 ‘통일이 되면 함께 모셔야지…’하는 마음에서 미뤘다. 그러다가 팔순, 구순 잔치도 못해드렸다. 효를 다하지 못한 죄로 가슴에 못이 박힌 칠순을 넘긴 자식들은 지금 어머니와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자식들에게 인간의 본은 효(孝)라고 가르치며 “너희들이 어른을 공경해야 너희도 공경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젊었을 때 모 교수님이 70이 넘었는데도 아이 같은 순수한 모습이라서 “무슨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여쭸더니 “9순 노모님을 모시고 있어 집에 가면 아이가 된다”고 했다.
그 후부터 나는 ‘부모님을 모시는 사람들은 모두 착한 사람이다’는 대인관을 갖게 됐고 나 또한 윗사람들을 공경하려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근·현대를 살아온 우리들의 애환사다. 그리고 ‘전쟁은 인간사의 흐름을 단절시키는 비극일 뿐이다’는 교훈을 알게 한다.
어머니의 100년 인생을 어찌 몇 줄로 표현하겠냐만 그 시대를 살아온 어른들은 각각 스토리가 다르겠지만 모두가 그렇게 살아왔다.
‘5월 가정의 달’과 ‘6·25전쟁 발발의 달’을 맞아 ‘어른공경’과 전쟁으로 가정이 파손된 일천만 이산가족들과 마음을 같이 하고 싶어 이글을 쓴다.
행복한 가정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신동설 발행인  sds15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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