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 출근시간보다 조금 일찍 승용차로 집을 나선다. 차로 30분 거리인 봉수산휴양림은 나의 삶의 터전이다.
차안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음악에 흥을 돋으며 전국 제일의 호수, 한 폭의 그림 같은 예당호수를 바라보며 달리다가 약간 경사진 도로를 오르면 봉수산 중턱 휴양림에 도달한다.
아직은 꽃샘바람이 가시지 않는 이른 봄 휴양림 아침, 상큼한 공기가 코끝을 스치고, 마른 풀 속에 숨어있던 비둘기 한 쌍이 푸드득 날아 파란 창공을 가르니 놀란 박새 한 마리가 파르르 날아 옆 나뭇가지에 앉는다.
이것은 어느 동화(童話)가 아니다. 바로 나의 주변 현실이다.
그런데 지금부터 8년 전, 33년의 아쉬웠던 공직 생활을 뒤로하고 야심차게 2010년 지방선거에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시고는 그 후유증으로 위암 수술을 받았다.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 만감이 교차되면서 이곳 대도시의 삶과 나의 인생 행로를 심도 있게 점검해보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생활에 조금씩 여유를 찾아갈 무렵 출가한 딸이 살고 있는 홍성으로 아내와 함께 나들이를 했다.
전에 몇 차례 다녀와서인지 푸르른 홍성은 마치 가수 톰 존스의 ‘고향의 푸른 잔디’를 되뇌게 하였고, 가슴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향수의 감성이 온몸을 휘감았다.
몇 개월 후 어렵잖게 이사를 하고는 자연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자연을 노래해보기로 했다.
한 발짝만 밖으로 돌리면 봄나물이 지천에 널려있어 쑥과 고사리, 머위나물, 뽕잎과 오디를 채취, 끓이고 무치고 효소를 담그니 그 맛과 향이 흘러가는 내 인생 후반의 시간들을 불러 놓고 좀 더디게 가라고 협상이나 하는 것 같았다.
저녁밥상 앞에 마주앉은 아내와 나는 이 세상에 그 무엇이 부러울까!
마주한 아내의 무언의 얼굴에 행복이라는 글자가 진하게 묻어있었다.
이런 웰빙 생활로 건강이 회복되었고 한동안 미뤄왔던 봉사활동을 하며 짬나는 데로 자격증에 도전하여 요양보호사 자격증, 숲 해설가 자격증을 취득했다.
작년엔 오서산휴양림에서 숲 해설가로 근무하며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면서도 보람의 연속이었다.
10월 중순에는 화성에서 나의 숲 해설을 듣기위해 일부러 왔다는 한 가족에게 나는 봄부터 쌓아왔던 모든 지식과 자료를 동원하여 오솔길을 오르내리며 특색 있는 나무를 비롯, 산에 피어나는 가을 야생화, 이름 모를 풀 한 포기까지 정성을 다해 해설을 하였다.
숲 해설 중간 쉼터인 벚나무쉼터에 도착하여 봄에 지어놓았던 나의 자작시를 읊어보기도 했다.

■ 벚꽃님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봄이 오고 있네
저기 하얀 꽃이 피네
봄 향기 싣고 날아온 벚꽃님
아침 햇살에 살포시 인사만 하고 가려는데
실바람 따라 하얀 노래 부르라 하네
그런데, 곱게 물든 너의 아침찻잔에 다소곳이 내려앉는다
그대가 꽃이 되고 꽃이 그대 될 때
서로 멀뚱히 바라보며 웃어보면 좋겠네

아침에 시작했던 해설이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도록 신바람 난 해설이었다.
나도 그들과 이미 한 가족이 되어 있었다.
손수 마련해 온 그 가족의 도시락 점심 제의를 거절 할 수가 없어 낙엽이 소복이 쌓인 벚나무 옆 의자에 앉아 함께 했다.
그 맛은 평생을 두고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만일 내 나이가 더 들어 입맛이 떨어진다면, 그 입맛을 돌이킬 수 있을 만큼 참맛이었다.
그런데 나를 이토록 행복의 문으로 안내해준 숲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 세상 모든 사물은 무생물과 생산자, 소비자, 분해자로 이루어져있다.
오직 풀과 나무만이 생산자일 뿐이다.
‘숲’은 나무와 풀이 공존할 때 비로소 ‘숲’이라 한다.
숲에 들어가면 향긋한 냄새와 함께 시원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숲이 물과 이산화탄소를 흡입하여 광합성을 통해 산소와 수분 그리고 피톤치드를 뿜어내기 때문이다.
사람은 아프거나 다치면 병원엘 가서 치료를 받지만 나무는 움직일 수 없어 스스로를 치료하기 위해 피톤치드라는 물질을 만들어낸다.
피톤치드의 주성분은 테르핀으로 나무에 침입하는 곰팡이, 세균, 바이러스, 벌레 등을 살균한다.
피톤치드가 사람에겐 심폐 기능을 강화시켜주고 피부를 보호하며 아토피 피부병을 치료하고 음식물을 상하지 않게 한다.
또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정신을 맑게 하여 삶의 질을 높이려는 인간에겐 없어서는 안 될 물질인 것이다.
숲 해설 기간은 나무가 대지로부터 물을 빨아올려 잎을 트기 시작하는 4월부터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이제 가야 할 때를 알고 미련 없이 가지와 이별을 하는 11월 말까지다.
아름다운 경관과 맑은 공기 속에 몸과 마음의 치유를 위해 사람들은 사용료를 지불하고 휴양림을 찾는다.
그러나 급여를 받아가며 숲속 휴양림에 근무하는 나는 진정 빛나는 인생 후반기를 맞았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성 싶다.
이제 막 숲과 자연에 심취된 나, 공무원 연금이 있어 더욱 안정된 숲 해설을 할 수 있는 나, 일흔이 가까워 오고 있긴 하지만 숲속의 모든 생물들은 물론 나와 만나는 사람들이 나의 친구요, 삶의 지표가 되어주니 나의 인생 후반이 더욱 반짝반짝 빛나길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떠오르는 태양보다 아름다운 황혼을 예찬한 어느 시인이 생각난다.

최복내 숲 해설가·해병 220기

무적해병신문  rokmc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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