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적 결정적 선택
중국과 한국은 1992년 8월에 국교를 맺었다.
국가 관계에 있어서 15년이란 결코 긴 시간은 아니지만 중·한 두 나라는 정치, 경제, 문화, 과학기술, 군사 등 각 방면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양국 지도자들은 빈번하게 왕래했고 상호 신뢰도 날이 갈수록 두터워졌으며 국제적 활동도 밀접, 특히 연간 무역거래는 그 액수가 날로 증가하여 이미 미화(美貨) 1천 300억 달러를 넘었다.
역사적인 이유로 수십 년에 걸친 양국관계의 단절이 부드럽게 진전되어 국교를 수립하기까지는 10여 년의 시간이 경과해야 했다.
사실을 증명하듯 양국이 모두 승리하는 결과를 가져와 두 나라의 국교수립은 역사적 결정적 선택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단계에서 내 스스로 친히 경험한 바를 회고하건데 적지 않은 의의가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1978년 중국 공산당 제11기 3중 전회(중국 공산당의 최고 간부회의인 제11기 3차 전체 회의로 중앙위원 200여 명이 모여 정치국원과 상무위원 등의 지도부를 선정하고 연간 정책을 결정하는 최고의 정책기구 ※편집자 주) 이후 전국적 공작의 중심과제는 경제 발전 문제로 옮겨갔다.
개혁개방 발전을 추구함으로써 인민들의 사상은 심각한 변화를 가져왔으며 외교 영역도 예외가 아니었다.

■ 변화한 국제적 정세
그 때 외교적으로 직면한 주요 임무는 더 많은 주변 국가들과 교류를 발전시키고 개혁개방의 창조적 조건을 유리하게 조성하는 일이었다.
당시 중국과 주변 10여개 국가의 교류는 바야흐로 합작을 강화하고 쌍무적 관계를 부단히 발전시키는데 유독 바다 하나 건너 있는 남조선(당시는 한국을 중국에서는 이렇게 불렀다)과는 서로 승인하지 않고 중국 외교관들이 남조선 외교관들과는 인사도 나누지 않으며 지냈고 국제회의장에서 남조선대표가 발언하면 우리 대표들은 퇴장하고 있으며 상대방 쪽으로 가지도 않았던 사이었다.
이러한 관계가 형성되었던 주원인은 6·25조선전쟁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사정이 이미 30여 년이 흘렀고 국제정세도 큰 변화를 했으며 이런 관계를 더 이상 계속 고수하는 것은 새로운 정세이래서 돌파해야 할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기억하기로 1982년 초 중국 농구팀과 남조선 농구팀이 캐나다 어떤 도시에서 한 바탕 시합을 치렀다.
당시의 규정에 의하여 중국팀이 남조선팀과 페넌트를 교환할 뿐만 아니라 기념품과 생화를 나눠야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이에 한국선수단은 필경 꽃다발을 가지고 입장했지만 뜻밖에도 그것을 관람석의 군중들을 향해 내던졌고 장내에는 일시에 열렬한 박수소리가 터져 나온 반면 우리 팀은 입장이 난처해졌다.
비슷한 상황이 그전에도 일어난 적이 있고 순간적으로 발생하여 그다지 감정이 좋지는 않았으나 기왕에 일어난 일이고 과거지사는 과거의 일로 지나쳐 깊이 따지지도 않았다.

■ 후야오방 중·한 관계 재검토 지시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후야오방(胡耀邦) 동지(약간 자유적인 경향의 중국 공산당 총서기 ※편집자 주)는 경기장에서 발생한 이러한 비정상적인 상황을 ‘내부참고’로 외교부에 지시하여 개선할 수 없는가 고려하여 상신하도록 했다.
원래 이것은 해외에 있던 한 민간기자가 농구장에서 목격한 전체 상황을 ‘내부참고’ 사항으로 회보한 것이었다.
이처럼 흔히 있던 예삿일로 되어 있던 것을 고도로 중요한 사항으로 거론하여 회답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었다.
바로 우리들 사고의 많은 부분인 이런 ‘금기’ 분야를 반드시 타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금지된 분야’를 타파하는 일은 말하기는 쉬었다.
(북)조선과 중국의 관계는 피로 엉킨 오랜 기간 시련을 견뎌낸 역사적인 일로 결코 깨뜨릴 수 없는 견고한 것이었다.
김일성 등 일단의 공산당들은 20세기 30~40년대에 일찍이 중국의 동북지방(만주)에서 항일 투쟁에 참가했고 선혈로서 중국의 혁명을 지원한바 있다.
50년대 초 조선전쟁이 폭발하자 중국의 변경이 외침을 받게 되어 중국인민들은 “미국에 대항하여 조선을 지원하고 국가를 보위한다(抗美援朝 保衛國家)”는 기치를 높이 들고 지원군이 압록강을 건너 조선인민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피나는 투쟁으로 (침략에) 항거하였다.
그때의 국제정세 아래서는 마오 주석 등 중앙의 영도자들은 반미제일선에 있던 조선지도자들에게 중국은 조선의 큰 후방으로서 우리들은 어깨를 나란히 하여 전투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어떻게 이처럼 깰 수 없는 ‘금기’를 우리가 정책 전환을 추진할 것이며 어떻게 중·조선관계와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주지 않으며 (북)조선동지들이 받아들이도록 할 것인가 하는 것은 하나의 절박하고 엄중한 문제로 제기되었다. <계속>

▲ 박 실 초역 / 전 국회사무총장, 대한민국헌정회 이사,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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