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솔산지구전투위령비

■ 도솔산 접근, 통제로 불가능
기자는 양구군 홍보팀 김영일 팀장의 안내를 받아 도솔산 현지를 찾았다.
하지만 65년이 지난 지금 도솔산은 접근이 통제돼 취재가 불가능했다.
도솔산 중턱에 양구군이 세운 도솔산 위령비에서 당시 분위기를 조금 느낄 수 있었다.
위령비 왼쪽으로는 우리 해병대의 작전 루트와 날짜가 상세히 표시돼 있었고, 위령비 후면 동판에는 우리 해병대와 미 해병대 전사자 명단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우리 해병대 전사자는 214명, 미 해병대는 623명이었다.
이를 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특히 미 해병대의 많은 전사자에 고개가 숙여졌다.
또 위령비 정면 오른쪽으로 탱크가 상징적으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고, 양구군 5개면이 만들어 세운 충령비 장승이 쭉 늘어져 있었다.
위령비로 올라가는 두 갈래길 못 미쳐 도로 아래에는 당시 우리 해병1연대 지휘부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에 D 육군 부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 해병1연대는 창설 1년의 초짜
우리 해병대 1연대의 도솔산 전투는 미 해병 1사단 5연대와 임무 교대 하면서 시작됐다.
미 5연대가 작전 중 500여명의 사상자가 나면서 우리 해병1연대가 작전을 인계 받았다.
미 5연대는 세계 최강의 해병 부대로 소문나 있던 부대였다.
이에 비해 해병1연대는 창설된 지 겨우 1년여밖에 안 되는 초짜였다.
그래서 산악 전투에 필수적인 독도보법도 제대로 익히지 못 했고 인식표도 이해 못 했다.
이런 우리 해병대를 두고 하산하던 미 해병대들은 크게 걱정해 주었다.
해병1연대장은 김대식 대령이었고, 1대대장은 공정식(6대 해병대사령관, 예·중장) 소령, 2대대장은 윤영준(예·소장) 소령, 3대대장은 김윤근(예·중장) 소령이었다.
도솔산전투는 6월 1일부터 개시됐다.

■ 우리 해병대가 맞서야 할 인민군 중공군은 1만 명이 넘는 사단급
당시 해병1연대 병력은 4,500명이었고 인민군과 중공 병력은 사단급이었다.
우리 해병대 1대대는 도솔산 왼쪽에서, 2대대는 중앙에서, 3대대는 우측에서 공격했다.
1연대가 맡은 공격 지점은 도솔산을 포함해 모두 24개 봉우리였다.
캔사스선(임진강 하구-연천-화천-양구-원통-간성) 안의 16개 목표와 배지선(Bager Line, 돌산령·도솔산·팔량리·솔룔포·대령포) 선상의 8개 목표였다.
이곳에는 인민군 최정예부대인 제5군단 예하의 12사단과 32사단이 배치돼 있었다.
공격에 들어간 공정식 1대대장은 자신의 좌우명인 임전무퇴를 부대원들에 강조하며 맡은 지점 목표를 빨리 점령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1중대(중대장 이서근 중위)는 대대 왼쪽에서 제1목표를 향해 전진해 갔다.
2대대(대대장 윤영준 소령)와 3대대(대대장 김윤근) 중대도 각기 맡은 지역 공격에 나섰다.
1대대는 전진 중 초반에 적의 공격을 받았다.
적의 박격포 공격에 우리 해병대 포병은 105mm 곡사포로 대응했다.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 공격 여의치 않자 소대별로 공격
우리 포격으로 공격 목표인 제1목표가 박살났다.
잠시 물러났던 1중대는 공격 형태를 소대별로 전환해 재공격에 나섰다.
경사도가 심한 곳에 위치한 적진지는 지뢰와 부비트랩이 곳곳에 설치돼 있어 전진이 여의치 않았다.
육탄전과 기관총 사격과 박격포를 퍼부은 끝에 제1목표를 점령할 수 있었다.
이 전투에서 1중대는 다수의 인원 피해를 입었다.
1중대는 여세를 몰아 제2목표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짙은 안개와 비로 인해 더듬대며 한걸음씩 전진했다.
난데없는 적의 공격으로 1중대 대원 5명이 전사하고 12명이 부상당했다.

제2목표 점령이 실패했다.
공정식 대대장은 재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적의 저항이 완강해 전진할 수 없었다.
그러자 공정식 대대장은 공격 임무를 임병윤 제3중대장에게 맡기고 제2목표와 제 4목표도 공격토록 명령했다.

■ 포복으로 적진지 공격키로
제2목표는 인민군 12사단장의 진지 사수 명령이 내려져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저항이 남달리 거셌다.
임 중위는 여기서 결단을 내렸다.
포복으로 고지를 점령키로 한 것이다.
공격에 나선 임 중위는 제2목표 중간 지점을 장악한 뒤 정상까지는 야간 포복으로 올라갔다.
이를 안 적들은 기관총 사격과 방망이 수류탄을 투척하며 저지했다.
그러나 임 중위는 몸을 숨겨 가며 2목표까지 올라갔다.
3소대장 김동운 소대장의 특공조 공격 도움을 받아 마침내 2목표를 점령했다.
미 해병 1사단장 토마스 소장은 문제의 4목표와 9목표, 12목표를 점령하지 못 하자 김대식 연대장에게 조속히 점령할 것을 독려했다.

■ 공격 여의치 않자 야간 공격으로 전환
이 목표들은 모두 경사도가 높은 절벽이어서 야간 공격이 어렵지 않았다.
우리 해병은 여기서 공격전법을 주간에서 야간으로 바꾸어 공격을 시도했다.
난공불락이던 4목표도 야간 공격 시도로 점령됐다.
9목표도 12목표도 점령했다.
이들 목표가 점령되기까지는 수많은 인명 피해를 입어야 했다.
이때 각 중대장들은 위령제를 올려 희생한 전우들의 혼을 달래 주기로 하고 즉석에서 위령제를 지냈다.
조화는 지천에 널려 있는 야생초로 대신하고 위령비는 주변의 큰 나무를 잘라 대검으로 다듬어 만들었다.
충령비(忠靈碑)란 글씨는 안동 출신 김동환 소위가 썼다.
도솔산을 점령하지 못하면 그 북방에 있는 피의 능선(해발 1,211m)과  단장의 능선(해발 894m), 가칠봉(해발 1242m) 김일성고지, 모택동고지 등도 점령이 불가능했다.
전체 점령 목표(24개) 중 가장 적의 저항이 완강 한곳은 제4, 제9, 제12목표였다.

■ 이근식 소위, 수류탄 들고 홀로 적진 파괴에 나서 성공
제4목표와 제7목표 점령은 2중대장 이응덕 중위에게 맡겨졌다.
즉각 공격에 나섰으나 적은 끄덕도 안 했다.
그러자 3소대 이근식 소위가 나서 “내가 적진지를 분쇄 하겠다”며 홀로 나섰다.
이 소위는 수류탄 4발을 차고 포복으로 적진지를 향해 기어 올라갔다.
정상 가까이 가자 적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수류탄을 양손에 든 이 소위는 손에 땀이 났다.
이윽고 핀을 빼고 수류탄을 적진지 안으로 밀어 넣었다.
순간 꽝 소리와 함께 진지는 박살나고 적들은 다이빙 하듯 곤두박질치며 나가 떨어져 죽었다.
이후 이 소위는 수류탄돌격소대장이란 별명이 붙었다.
한편 예비대였던 3대대(대대장 김윤근 소령)는 도솔산 중앙에서 공격 중이던 2대대의 피해가 크자 김대식 연대장의 명령에 따라 공격 부대로 전환했다.
그래서 해병대 예비대가 없는 부대가 됐다.
3대대의 공격 목표는 제6, 제12, 제13목표 점령이었다.
김윤근 3대대장은 즉각 예하 10중대에 공격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10중대의 공격은 적의 완강한 저항으로 번번이 실패했다.

■ 강복구 9중대장, 아픔 견디며 공격 고삐 늦추지 않아
미 해병대 포병의 네이팜탄 투하와 기총소사의 지원도 받았으나 결국 피해만 입고 11중대와 교대해야 했다.
11중대의 공격도 지형 지역이 험악해 여의치 않았다.
오히려 적들은 공세를 강화했다.
적들은 유리한 고지에서 수류탄을 퍼부으며 아군의 전진을 막았다.
11중대장 박건섭 대위는 이때 적이 설치한 부비트랩 폭발로 큰 부상을 입었다.
그래도 박 중대장은 진두지휘하며 적진을 향해 전진했다.
하지만 적의 방어선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30여 명의 인명 피해를 입고 공격 임무는 강복구 중위가 지휘하는 9중대에 넘어갔다.
9중대는 미 해병대 포병의 155mm곡사포 지원을 받으며 전진했다.
이때 강 중대장은 곡사포 포격에 맞은 부서진 돌 조각에 등을 맞아 상처를 입었다.
그래도 강 중대장은 아픔을 견뎌내며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수류탄을 투척하며 돌진해 오는 9중대의 강력한 공격에 적들은 전의를 잃은 듯 했다.
이때라 판단한 강복구 중대장은 돌격 명령을 내리고 부하병들과 함께 적진지에 뛰어들었다.

■ 김일성이 난공불락이라던 적진지 차례로 점령
미 해병 전투기들도 네이팜탄 등을 투척하며 9중대의 공격을 도왔다.
9중대는 드디어 왼쪽에서 공격하던 11중대와 함께 난공불락이라던 제13목표를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이 진지 안에는 적 시체 120여 구가 널려 있었다.
그 후 적의 간헐적인 공격이도 있었으나 미미했다.
그들은 야음을 공격한 뒤 날이 밝으면 도망쳤다.
3대대는 여세를 몰아 제12목표를 점령하고 이어 14, 15목표를 점령했다.
이로써 해병대 1연대는 작전 20여일 만에 캔사스선 안의 16개 목표를 전부 점령하고 배저선상의 제17, 18, 19등 8개 목표도 점령했다.

■ 이승만 대통령, 전투 끝나자 해병대 부대에 ‘무적해병’ 휘호 하사
해병1연대가 전투 병력 4,500명으로 사단 병력인 인민군과 중공군을 격퇴하고 도솔산지구전투를 승리로 이끌자 이에 고무된 이승만 대통령은 해병1연대를 직접 방문해 해병대 장병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무적해병’이라는 친필 휘호를 현장에서 써 하사했다.
‘무적해병’은 오늘날 ‘귀신 잡는 해병’과 함께 해병대의 대명사가 되어 있다.
미국 대통령은 참모장 김성은 대령과 연대장 김대식 대령에게 각각 은성무공훈장을 수여했고, 1대대장 공정식 소령과 2대대장 윤영준 소령, 3대대장 김윤근 소령, 통신대장 이판개 대위에게는 각각 동성무공훈장을 수여 했다.
제4목표를 수류탄으로 파괴한 이근식 소위에게는 은성무공훈장을 수여 했다.

■ 해병대 불굴의 감투 정신으로 무적 해병의 신화를 창조
김일성은 도솔산지구 고지대에 구축한 제4, 9, 12목표를 난공불락의 붉은 철벽이라고 호언장담했었다.
그러나 우리 해병1연대는 불굴의 감투 정신으로 이 진지들을 모두 박살내고 점령했다.
도솔산 지역은 아군이 확보하지 못하면 북상 중에 있던 국군과 유엔군의 지상 부대는 한 걸음도 진출하지 못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포위당할 우려도 있었다.
전략상으로 그만큼 중요했다.
해병1연대는 도솔산 전투에서 북한의 정예부대를 격퇴한 전과로 명실공이 ‘무적해병’의 신화를 창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피비린내 나는 도솔산 지구 전투는 1951년 6월초 시작해 20일 만인 24일 종료됐다.
하지만 아직도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이상 이 전투가 완전히 끝났다는 볼 수 없다.

김명용 대기자  rokmc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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